사랑의 힘, 천진난만으로 둘러싸인
디라이트(D’light)는 두 창작자의 기묘한 혼합 상태다. 이들은 통일된 작업을 수행하기도 하고, 한 사람이 전면에 나설 때 다른 이가 뒤를 받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예술은 조각과 미디어와 회화와 설치 미술로 두루 퍼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들의 상보 관계가 좀 더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배문경 작가는 우리 옛 민화와 서사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신기술로 해석한다. 얼핏 봐 낯설 게 없으나, 전통의 재맥락화를 이룬 전시 공간은 매혹스러운 풍경을 이룬다. 익숙함과 혁신 사이 어디쯤에서 작동하는 환영의 연출은 관람자들에게 신비로운 감각의 경험을 이끈다.
서현규 작가의 회화는 지금까지 디라이트가 보여준 동반자 관계에서 좀 더 개인적인 면으로 튀어 나간 실험이다. 또한 이 그림은 작가 본인의 공적 이력에서도 그늘에 가려있던 Side-B 영역이었다. 이 그늘은 어둠이나 미완의 표상이 아니다. 이 전시는 휴식과 충만이라는 자기 긍정의 물증인 유화 작품을 보는 흔하지 않은 기회다.
배문경 작가가 펼친 <이상한 나라의 민화 이야기>는 제목만 보더라도 루이스 캐럴의 그 유명한 토끼 구멍이 금방 떠오른다. 이 프로젝트에는 관람자를 다른 차원의 세계로 깊숙이 밀어 넣겠다는 사심이 가득하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치트 키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는데, 미디어 아티스트 배문경도 그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루이스 캐럴 월드의 족보를 훑다 보면, 배문경 작가 기준으로는 항렬이 할아버지뻘쯤 되는 소설에 맞닿는다. 에드윈 A. 애보트의 고전 S.F 소설 <플랫랜드 Flatland>다. 줄거리는 이차원 평면 세계에 사는 사각형(Square)이 어느 날 삼차원에서 건너온 동그라미(Sphere)를 마주치면서 다차원의 세상을 깨닫는 게 뼈대다.
한편으로 생각할 때, 플랫랜드는 화가들이 캔버스라는 이차원 평면 물건을 앞에 두고, 자신만의 공간을 펼치려고 머리 싸맨 미술사와 겹친다. 지난 시대 화가들이 이차원 캔버스라는 납작한 세계에 갇힌 정사각형의 처지였다면, 그 세계를 떨치고 고차원으로 도약하려던 실험이 회화의 역사다. 바로 이 지점이 평면의 세계관을 좀 특별한 방식으로 빚어내는 배문경 작가의 시도가 묘하게 이어진다.
지금까지 배문경 작가는 화이트 큐브나 도심 거리 같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간 해석을 벌여왔다. 비록 전부 출석은 못 했지만, 나는 작가의 전시를 종종 봐왔으며, 그때마다 들었던 느낌이 있다. 뭔가 하면, 전시 공간이라고 설정한 곳에 들어서면 내가 연극 무대 세트가 놓인 극장에 온 기분 같은 것. 관객에게는 전방 180도의 시야 범위 안에서 입체와 평면의 경계에서 말랑대는 조형이 배치되는데, 여기에 섬광이 어우러진 미디어 아트가 색면을 입히면서 한 편의 환상극이 완성된다.
이 무대에 작가가 불러들인 주·조연은 우리 민화 속에 나오는 크리쳐들이다. 작가는 자신이 상상하는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체화한다. 여기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오브제가 동원되기도 하며, 미술과 그것이 아닌 조형의 양자에 걸쳐 있는 공정이 들어가기도 한다. 예컨대 형형색색의 환조는 지브러쉬로 3D 모델링을 한 산물이며, 어떤 것들은 포맥스로 가공한 등신대 형태로, 또 라이트박스 형식으로 인스톨레이션의 부분을 이룬다.
사실 이 작업의 기원을 따진다면, 그 일은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작가의 초기 작업은 반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 같이 친숙한 이미지를 지금처럼 보여주는 디오라마였다. 그러다가 작업은 방향을 틀어 우리 옛 그림이나 설화에 나오는 까치, 호랑이, 해태, 봉황, 기린, 달 토끼, 거북이 같은 영물이 하나씩 배문경의 이상한 나라에 신고식을 치렀다.
이 모든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다. <이상한 나라의 민화 이야기>는 배문경 작가의 품성처럼 선량한 세계관이다. 그가 만든 피조물들은 험악하기는커녕 하나같이 해가 없고 사랑스럽다. 어쩌면 작가가 십장생의 영원 불멸성을 가족 간의 갸륵한 사랑이 끝없기를 염원하는 정서가 작동했을 것 같다.
한 가지 더. 배문경 작가는 스스로 동시대 예술의 첨단을 이끌겠다는 야심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뭣보다 이건 그가 가져온 레퍼런스인 민화가 지금 한국 미술 체계에서 어떤 위계에 매겨지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피에르 부르디외식으로 냉랭히 말하자면, 민화는 창작과 감상에서 진입 문턱이 낮은 대규모 생산의 장(Field of large scale production)에 가깝다. 이걸 미술의 핵심을 거머쥔 제한된 생산의 장(Field of restricted production)에서는 진지한 예술가상이라는 자기 포장이 어려운 탓에 꺼리는 면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디어 아트 기법의 담지자인 작가는 그토록 친숙한 옛이야기를 새로운 디지털 형식 실험으로 구사하는 데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 이상한 나라를 즐길 이유는 차고 넘친다.
서현규 작가가 이번에 보여주는 행적은 한 편의 반전 서사와 같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친숙한 그가 철재 조각과 광학 도구 대신 붓을 다루는 화가로 나섰기 때문이다. 허나 이건 작가가 장르를 전향한 게 아니다. 그에게 회화는 늘 해오던 것이며, 미술가로서 출발점이었다. 따라서 그의 유화 작업은 느닷없는 이벤트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면모를 공개하는 일에 가깝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건 사람뿐이다. 특히 사랑스러운 아이들 모습이 많은데, 작가의 직계로 추측되는 얘들은 작가 본인 같기도 하고, 작품을 보는 우리의 초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왜 하필 아일까 관해 생각해 보면 금세 수긍이 간다. 그 순수한 존재는 가식 없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는 주체다.
화풍은 꽤 강렬하다. 표현주의적인 선명한 대비와 야수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거친 붓질이 화면을 장악한다. 이 그림이 형태를 사실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할 의도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거친 필획에 깊은 감정이 배어 있다. 스트로크의 무게감을 중화시키는 매개는 소박한 색감 연출이다. 유화 기름의 농도를 조절해 만들어 낸 농담의 색 겹은 담백한 느낌을 전한다.
묘사된 인물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나 에곤 실레 그림의 주인공들처럼 형상이 조금씩 왜곡되어 있다. 대부분이 홀로 아니면 짝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화폭 안에서 서로에게, 혹은 화면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리에게 내밀한 뜻을 전한다. 이 감정은 광장에서 청중에게 전하는 웅변이 아니라,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의사 표현이다. 대책 없는 응석 부림, 무장 해제된 웃음, 잔잔한 응시가 표정의 뒤를 받힌다. 관객은 그림에 어떤 사연이 담겼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일부러 감출 이유가 없듯, 우리에게 일일이 밝힐 의무도 없다.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서현규 작가의 그림은 어쩌면 먼 훗날, 한 미디어 아티스트가 평생 남몰래 그려온 그림이 유작처럼 발견되는 편이 더 극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이 사적인 프로젝트를 지금 이곳에서 공공연히 드러내는 이유가 있을 테고, 적어도 이 평문을 쓰고 있는 나는 그 뜻을 존중하려 한다.
그의 시선이 닿는 세계 내 전망은 순수하고 고귀한 힘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게 있으니, 그것은 이 동심 어린 회화와 그가 해왔던 복잡한 미디어 설치작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형태적인 상동성이나 작업 개념의 귀속성은 당연히 아니다. 그가 주력으로 보여주고 있는 미디어 아트는 어딘가 거대하고 정교한 어른 아이의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설 재료인 파스너의 구성 원리를 적용한 대표작
공교롭게도 막스 베버가 철장(Iron Cage)이라고 은유했던 공적 관계 속에서 예술가 서현규가 택한 탈주 지점은 가족이었다. 결국 그를 미술 창작으로 이끄는 동력의 원천은 사랑이었던 셈이다. 그는 청년 작가 시절의 대부분을 미디어 아트의 완성도를 올리는 데 바쳤고, 그것은 그의 삶 자체였다. 허나 이 미디어 아티스트는 그림 그리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미디어 아트가 직무와 이성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차가운 미술의 결정체라면, 그림은 그 긴장에서 벗어나 감성을 채우는 자기 회복의 매체인 셈이다. 우리가 서현규 작가의 빈틈 없는 예술 구조물 뒤에 숨겨져 있던 붓 터치를 마주하는 것은 작가 본인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소소한 위로의 방편이다.
윤규홍, 미술비평/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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