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작품 공간

전시

2025 대구아트웨이 월간범어 5차 플라스틱 마음

전시포스터

전시포스터

3.Tank.2025함석70x102x100cm

3.Tank.2025함석70x102x100cm

4.특별시2023~2024resin10x10x15cm

4.특별시2023~2024resin10x10x15cm

체험 프로그램

체험 프로그램

전시포스터
3.Tank.2025함석70x102x100cm
4.특별시2023~2024resin10x10x15cm
체험 프로그램
2025 대구아트웨이 쇼룸 입주예술인 릴레이 개인전 <월간범어> 5차

플라스틱 마음_황주승

일시: 8. 11.(월) ~ 8. 31.(일)

장소: 대구아트웨이 기획전시실1

 

작가 황주승은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물건,
장난감, 변기, 전자기기 등을 낯설게 재해석해 감정과 기억이 얽힌 조형 작업으로 풀어냅니다.
'플라스틱 마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사물이 사람의 태도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탐구하며, 기계적인 반복 속에서도 각자의 감정이 만들어내는 ‘다름’과 ‘특별함’에 주목합니다.
레진과 3D 프린터를 활용해 익숙한 오브제를 유연하고도 정교하게 다듬은 황주승의 작업은 산업 재료의 매끄러움과 작가 특유의 손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귀엽고 익숙한 형태 속에 묘한 기이함이 스며 있으며, 그 이질감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만듭니다.
산업적 물성이 작가의 감각을 만나 탄생한 이 형상들은 귀여움, 이상함, 익숙함, 불편함이 뒤섞인 복합적인 시선을 끌어냅니다.

 

 

Plastic Heart: 유연하고도 끈질긴 마음의 모양

고진영

 

기억이 형성되던 나이에, 내가 그러한 세상들로부터 받아들인 것은, 오직 그것들이 안겨준 감각뿐이었다어떤 목적에도 매이지 않은, 다만 훗날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이루는 의미가 되어준 감각들.[1]

롤랑 바르트

 

일상의 물건은 그것이 작동하거나 사용되는 공간을 전제하고 있다. 변기는 화장실을, 장난감은 놀이방을, 그리고 이 일상적 물건의 결합은 더 확장된 집이라는 구조를 함축한다. 이때 물건은 독립된 대상이 아니라, 특정 공간의 질서와 기능에 의해 위치 지워지는 구조적 일부로서 의미를 얻는다. 물건의 본질이 그것이 기능을 실현하는 공간과의 합목적적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기능화된 공간의 압축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그 공간의 표현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물건이 전제하는 특정한 행위와 태도가 우리에게자연스럽게느껴지도록 구조화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컨대, 화장실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가려진 채 않는 방식으로 변기를 사용하는 법을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놀이방에 들어갔을 때는 바닥에 앉거나 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시되는 듯 여긴다. 물건을 사용하면서, 그 공간이 요구하는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다. 변기가 속한 장소에서의 행위, 장난감이 속한 장소에서의 행위가 구분되듯, 우리는 공간이 요구하는 목적과 역할을 스스로 수행하며, 그 합목적성 속에서 자신이누구여야 하는지를 배워간다. 이러한 구조화는 학교, 미술관, 나아가 사회와 국가라는 거시적 공간의 질서 속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그렇게 구조화된 개인의 이미지는, 마치 일상의 물건처럼, 자신에게 특정한 역할을 기대하는 공간의 표현이 된다.

황주승의 시선은 이처럼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특정한 기능과 목적이 사물과 인간을 구조화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지점에 머문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화가 추상적 관념이나 제도적 권위와 같은 거대함 아래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물의 배열과 그것이 위치한 사적인 공간의 작동 방식 속에서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수행된다는 점이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장치(apparatus)”라 부르며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러한 비물질적 질서와 관련된 일상의 물건이었다. 그는 장치가 인간을 포획하고 조직하는 기능적 구조이며, 이는 감시나 규율 같은 거시적 기제뿐만 아니라 가장 사소한 물건과 그 물건을 둘러싼 공간의 기호적 작동을 통해서 현실화한다는 점을 강조했다.[2]

오늘날 장치로 기능하는 일상의 물건은 그 물질성보다도, 그 물건에 투사된 의미, 이미지의 차원에서 더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사용 방식, 감정, 태도, 사회적 기대와 같은 이미지의 총합으로 작동하며, 그 이미지가 물건의 본질을 선행한다. 우리는 이제 물건을 사용한다기보다, 물건이 전제하는 세계관과 태도 안에서 스스로를 그에 적합한 사용자로 구성한다. 스마트폰 화면 위의 손동작, 노트북 앞에 앉는 자세는 물건 자체보다 그것이 가동하는 이미지의 체계를 위해 규정된다. 이는 동시대 공간의 목적이 물리적 기능에서 이미지로 전환되었고, 생산적 공간이 이미지의 순환을 위한 구조로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인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살아간다. 다시 말해, 삶은 공간이 요구하는 이미지로 포화되고, 인간은 그 이미지에 맞게 설계된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다양한 자신의 존재를 획득한다. 그러나 아감벤은 이러한 상태를다양함이 아니라분산됨(dispersed)”이라 표현했다.[3] 항상 자신이 아닌 타자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 모호한 상태,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서로뿐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도 흩어진 채, 이미지들 사이를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주체는 통합된 내면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간과 물건의 배치에 따라 분절된 태도를 수행하는 가소적인(plastic) 존재다. 그의 정체성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환되며, 전문가처럼 보이기를 요구하는 직장, 좋은 부모의 역할을 기대하는 가정, 자기 계발을 요구하는 헬스장이나 공부방 같은 일상적 환경 속에서, 그 내면의 감정은 특정한 이미지가 요구하는 정체성에 부응하려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황주승은 주체성이 더 이상 고유하거나 독립된 내면의 발현이 아니라, 공간물건이미지라는 현실의 연쇄적 구조 속에서 생산되는 결과임을 전제한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이미지화된 구조가 인간을 길들이는 동시에, 인간이 그 이미지의 질서를 역으로 전복하거나 재조합할 수 있는 잠재성 또한 품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황주승이 사용하는 레진은 본래 산업적 대량생산을 위한 재료지만, 그의 작업에서 이는 오히려 원형-주형분리조립 및 마감이라는 전통적인 조소 과정에 의해 가공되며 수작업적 정교함(craftsmanship)과 현대적 물질성이 혼성된 매체로 기능한다. 반면, 그가 병용하는 3D 프린팅은 작가의 제작 과정을 증폭하는 근대적 도구로서, “기계에 의한 형상화라는 탈주체적 특성을 수용하며, 전통적 개념의 작가가 근대적 기술 체계에 적응해 나가는 방식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그의 3D 프린팅 사용은 미술이라는 제도를 넘어서, 예술가로서 자신이 사회적 삶의 일부이자, 미술 외부의 영향력과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식하는 실천이다. 이러한 태도는 미술의 자율성을 절대화하기보다, 동시대 사회에서 예술가의 위상과 현실적 조건을 성찰하는 시선으로 읽히며, 작가라는 주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자각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이 둘은 모두 플라스틱이라는 현대 소비 문명의 핵심 물질성을 매개로 하며, 작가는 이를 통해 순수예술과 산업디자인, 일회용 소비재와 조형예술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그는 조형 매체에 대한 자기반성을 통해, 동시대 사회에서 예술이 점유할 수 있는 자리를 가늠하고, 주체가 이미지화된 현실을 어떻게 구성하고 감각할 수 있는지를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황주승이 주목하는 구조에 내재하는 동인(agency), 1960년대 이후 전개된 후기구조주의적 감수성기호의 자율성, 의미와 저자성의 해체, 중심의 분산, 고정된 위계에 대한 저항 등과 미술의 실천이 교차하는 지점들과 공명하는 듯하다. 미니멀리스트가일상적 생산의 문법(vernacular grammar),” 즉 작가가 처한 산업사회의 현실을 지시하는 구체적 물질의 기호를 통해 모더니즘 형식 논리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것처럼, 혹은 그보다 앞서 팝 아티스트들이 자본주의 소비 이미지의 질서에 비판적으로 응답하거나 아이러니하게 흡수되며 자율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흐렸던 것처럼, 황주승 또한 산업 재료와 대중적 오브제를 빌려 일상적 감정과 정체성, 소속감의 문제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4] 그러나 그의 작업이 기존의 제도 중심적 계보와 갈라지는 지점은, 그것이 구조에 대한 해체나 동화가 아니라, 그 구조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의 방식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황주승은 자신의 작업이 개인에 내재하는 특별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특별함은 나와는 전혀 다른 타자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화 속 캐릭터나 장난감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형상들이 개인의 감정과 기억을 만나 비로소 생성되는 이미지다. 이는 반복, 변형, 복제를 통해 소비를 전제로 생산되는 현대 사회의 이미지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황주승의 이미지는 선행하는 목적 없이, 감정의 접촉과 내면의 융합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모양과 질감—경량 패딩 같은 변기, 과자 같은 집, 손이나 발이 달린 탱크, 자동차와 휴대폰, 그리고 산호초 같은 오돌토돌한 표면의 질감이나 진주빛 입자의 반짝임 등—이 바로 그 물건에 대한 감각적 기억과 감정에 대한 사적인 이미지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는 이처럼 선행하는 목적이 없이, 있는 그대로 생겨나는 것을 생성(creation)”의 특성으로 설명하며,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제작하는 생산(production)”과 구분했다.[5] 오늘날 사회가 생산하는 이미지는 소비나 차별화라는 목적에 봉사하며, 반복 가능한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러나 황주승의 이미지들은 정형화된 구조 바깥에서, 감정이 투사된 대상을 통해 개인의 내면이라는 유일한 장소 안에서 매번 새롭게 피어나는 생성물이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반복을 구성하는 수많은 다름들의 생성을 포착하려는 감정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내가 경험한 세상은 그것과 만났던 나의 감각과 감정의 형태로 기억된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공간이고, 그곳에 담긴 기억의 정서가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가장 깊은 방식인 것이다.[6] 황주승의 작업은 바로 이처럼 익숙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감정의 지형을 이미지로 구현하며, 반복을 통해 파생되는 내면의 차이와 그로부터 비롯된 특별함의 모양을 생성한다.

작가는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지닌 고유한 빛을 다시 밝혀내고 싶다고 말한다. 스스로 소화(消火)했거나, 혹은 자신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그 빛은 주변을 밝히기 위함이 아닌, 자신을 기억해 내기 위한 빛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이 품은 빛은, 그것이 자리하는 공간과 공명하는 지속의 상태 속에서 연신나를 드러내려애쓰는 모습으로 읽힌다작가가 선택한 백열등이 빛으로서는 가장 낮은 온도를 지니지만, 오히려 물리적 발열은 가장 큰 것처럼 말이다. 일상 어디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백열등, 그러나 그 빛 중 어느 하나도 그 밝기, 온도와 채도에 있어 정확히 동일하지 않다. 측정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와 조건 속에서 모든 빛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르고, 그래서 특별하다. 이처럼, 그렇게 애써 발열하는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이가 갖지 못한 것을 점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조건을 경험하며 생성되는 고유한 따스함의 온도 때문이다. 황주승의 작업은 익숙한 일상의 사물 속에서 피어나는 각자만의 리듬과 감정을, 바로 그 일상에 스며든 사물을 통해 형상화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머무는 공간을 인간 개개인의 내면과 포개며, 무심히 생산의 공간에 동화되어 살아가던 이들에게, 주체성이 감각되는 인간의 공간을 잔잔히 환기한다. 개인은 언제나 외부의 압력과 조우하며 살아가지만, 그 압력과의 관계 방식은 결국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생산의 공간 속에서는 그것이 무심히 수용되지만, 그것이 개개인의 인간적인 공간으로 전환될 때, 그 압력은 더 이상 타자의 질서가 아닌 각자의 감각과 방식이 구성하는 세계의 형식이 된다. 그래서 황주승이 바라보는 풍경은, 어쩌면 그들의 일상에서 조용히 발열하는 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온도로 그려진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리듬과 감정이 공명하는 작고 조용한, 그러나 분명히특별한 시()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 Roland Barthes, Incidents, translated by Richard Howard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2), 7.

[2] Giorgio Agamben, What is an Apparatus? and Other Essays, translated by David Dishki and Stefan Pedatella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9), 14.

[3] Agamben, 15.

[4] Marjorie Welish, Signifying Art: Essays on Art After 1960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227, 232-3.

[5] 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translated by Donald Nicholson-Smith (Cambridge: Basil Blackwell, Inc., 1991), 70-1.

[6] Barthes, 6-9.

전시연계프로그램

물건에 깃든 당신만의 감정을 그려보세요!
〈나만의 Plastic heart〉

“내 감정이 굿즈로 태어난다!”
직접 그린 그림에 감정을 담고, 전시된 그림 중 1등 작품은 3D 프린팅 키링으로 제작해 드립니다!
감정이 깃든 물건, 나만의 이야기를 특별한 오브제로 남겨보세요.

 

○ 참여 방법

내 감정을 떠올리며 그림 그리기

벽면에 전시 후 관람객 투표

투표 1등 당선작은 키링으로 제작

 

○ 운영 일정

8월 15일(금), 8월 22일(금) / 총 2회
-  소요 시간 : 약 30분
-  대상 : 누구나
-  인원 : 선착순 20명
-  재료비 : 0원 (※수강료 무료)

 

○ 참여 신청
DM ▶ @831_stand_house 또는 현장 접수

 

당신의 감정이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 되는 순간,
〈나만의 Plastic heart〉에서 만나보세요! 

대구아트웨이 협력기관

  • 대구광역시
  • 대구문화예술진흥원
  • 대구예술인지원센터
  • 대구생활문화센터
  •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 예술경영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