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범어 3차 <패러다임>
2025. 6. 9.(월) ~ 6. 30.(월)
대구아트웨이 기획전시실 1
흐름 속의 질서, 무위(無爲)의 미학
파도는 부서지기 위해 달려오고,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흔들린다.
부서지는 순간마다 새로 태어나는 파도, 인간의 시간은 파도처럼 반복되고 우리는 잠시 그 안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파도는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일정한 리듬과 질서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파도의 리듬처럼 안정된 흐름을 본능적으로 갈망하고, 그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한다. 인간존재 역시 파도처럼 왔다가 사라지지만, 본질은 바다처럼 모든 것을 품고 있다.
바다를 동경하던 한 소녀는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으로 바다를 마주한다. 쉼 없이 다른 모습으로 밀려오는 파도의 크기, 소리, 움직임에 즐거운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어느덧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 바다처럼 깊고 넓은 존재로 살아가고자 한다. 반복되는 삶,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상을 인식하면서 인생의 유한성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파도가 부서지며 격렬할 때도 있지만, 결국 평온한 해변으로 돌아온다.
바다를 닮아가려는 성숙한 인간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평화롭고 균형 잡힌 존재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는 수용과 내적 균형을 통해 부서짐이 아닌 조화를 이루는 법을 따른다. 자신이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이해하고, 더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지혜를 갖게 되는 무위를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서지현의 작업은 투명한 레진을 활용하여 변화무쌍한 바다와 파도의 형상을 담아내고 있다.
자기 존재의 투영, 치유 또는 고독의 공간인 바다 앞에 선 그녀는 복합적이고 깊은 감정을 창조적인 투사를 통해 작품을 완성해 간다.
파도는 끊임없이 변하는 모습으로 생멸을 되풀이하지만, 그 흐름은 반복되는 순환의 법칙이 적용되는 자연현상에 기인한다. 인간의 삶도 늘 변화하지만, 그 안에도 반복되는 일정한 규칙과 질서가 있다. 인간은 이러한 바다의 모습을 통해 변화 속에서 이어지는 존재를 투영하며 자기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된다.
그녀는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본다.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며 모습을 바꾸지만, 바다는 변함없는 존재로 이어간다.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알 수 없는 파도는 한 번도 같은 물결이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부서질 때마다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하고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도처럼 사라지는 모든 존재에게도 결코 잃을 수 없는 본질이 있듯이, 인간도 수많은 충돌과 변화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유지해 간다.
서지현은 인생의 바다 한가운데서 흔들림 없이 모든 것의 근원인 본질을 탐구하고 있는 중이다. 대개 바다는 생명의 시작, 존재의 기원, 무의식의 상징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파도는 인간존재의 삶에서 등장하는 끝없는 갈망과 충동의 흐름으로 보았다. 인간이 바다를 동경하고 파도를 담담히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한 자연 감상이 아니라, 깊은 존재적, 심리적, 철학적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
바다 앞에 선 인간은 측량할 수 없는 존재의 작음을 일깨움과 동시에, 무한한 것 앞에서 느끼는 해방감으로 두려움과 경외가 섞인 숭고함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경외 속에서 자기중심적 사고가 무너지면서 인간은 겸허해지며, 존재 그 자체와 연결된 감정을 경험하며 겸손을 배우고 된다.
<견우와 직녀 2023>는 인간존재와 바다를 투영한 철학적 태도를 담고 있다.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이는 전경-배경 착시를 통한 다중안정성(Multistability)의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각할 때, 관심 있는 부분은 지각의 중심 부분으로 떠오르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처리된다. 보이는 전경이 친숙하면 친숙할수록, 어떤 대상이 전경인지 배경인지를 분류하여 인지하기는 쉬워진다. 하지만 종종 자극의 한 부분이 전경인지 배경인지 모호한 경우에는 감상자가 몇 가지의 다른 형상으로 지각하는 반전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 단순하게 막연히 본다는 것이 아니고, 인간 경험이나 모든 감각 영역이 서로 결합하여 각각의 해석이 모두 안정적으로 지각되는 것이다.
서지현은 자신 안의 예술적·감성적 자아를 바닷속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성숙한 사람은 자연처럼 행한다”는 경구처럼 바다는 무상함 속의 충만함을 일깨워주는 인간존재에 대한 위대한 스승이자 성찰과 성숙의 공간이다. 또한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무한함과 포용을 상징하는 존재이며 경계가 없다. 인간도 바다처럼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계속 배우고 질문하며 자기를 확장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는 순수예술과 공예의 장르 개념을 확장하여 바다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바다처럼 깊고, 유연하며 경계 없는 시선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업을 통해 감상자들에게 진한 울림을 전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방나교 미술평론, 미술학 박사
전시연계프로그램 '가애레진과 함께하는 UV레진 바다 스마트톡'만들기
일시: 6. 13.(금) 15:00
장소: 대구아트웨이 공방8번 스튜디오
사전접수:
인스타그램 @kaae_official
카카오톡 채널 @가애레진
참가비: 10,000원(재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