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룸 6번 스튜디오 이지원 ‘무한의 판타지아’
일시: 4. 7.(월) ~ 4. 30.(수)
장소: 대구아트웨이 스페이스1
(재)대구문화예술진흥원 대구아트웨이의 신규 전시 사업으로 새롭게 준비한 <월간범어>는 대구아트웨이에 입주한 예술인을 매월 한 명(팀)씩 집중 조명하여 시민에게 소개합니다. <월간범어>를 통해 일상 가까이, 더욱 친근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다양한 예술세계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월간범어>의 첫 번째 주인공은 이지원 작가다. 전시 주제는 ‘무한의 판타지아’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몰입의 감정과 무한한 기쁨을 표현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지원 작가는 전통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재료와 소재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고 있다. 작품의 모티브는 주로 ‘동양의 정물화’라는 ‘기명절지화’에서 착안하여 예부터 친근하게 접근한 정물을 작가만의 상상력과 기억을 입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묘사한다. 정물에 깃든 정신과 작가만의 이야기가 기승전결의 형태로 전개되어 마치 가상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선사한다.
환상의 경계를 넘다: 이지원의 회화세계
이지원 작가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의 사용은 언뜻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작가는 허약한 종이와 엷은 전통안료보다는 질긴 캔버스와 조금은 두터운 아크릴 물감이 더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100호 크기의 큰 캔버스 열 두개를 이어 붙인 대형 작품인 ‘기묘한 여행‘은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즉 작가가 처한 현실과 환경, 그 수면의 위 아래를 환상적으로 구현한 작품인데 그 간극을 좁혀 보다 이상적이고 견고한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동양화 재료보다는 아크릴 물감, 캔버스 등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기묘한 여행’은 총 네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작가의 이야기가 기승전결의 형태로 전개되며 기묘한 동식물이나 사물 등이 차례로 묘사되어 전체를 이루는 한 편의 서사시 혹은 긴 두루마리 그림과도 같아서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여행을 즐기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러 환타지의 요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무릉도원(武陵桃源)’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모티브를 사용한 것이며 퍼즐처럼 한 화면 위에 펼쳐져 작가 자신만의 가상의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작가는 이를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는 정감’,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 세계’로 묘사한다. 그러고보면 참 많은 회화 작품과 문학 작품에서 현실 너머의 공간, 이상향의 세계가 주제가 되곤 하는데 ‘숲 속에서 길을 잃는 정감’은 작업의 과정 중에서 시간을 잊곤 한다는 작가에게 그림이란 머물고 싶은 곳, 깨고 싶지 않은 낭만적인 꿈과 같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하는 많은 것들이 ‘동양의 정물화’라는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畫)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기명절지(器皿折枝)’는 동양 회화의 한 화제(畫題)이며 고동기나 자기에 꽃가지, 과일, 문방구류 등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잡화 계통의 정물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고동기는 제사에 쓰이던 제기인데 신비스러운 힘을 가진 왕권을 상징, 명문이 새겨져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귀한 그릇이어서 많은 문인들이 이에 대해 연구해 그림으로 남겼으며 강세황, 김홍도, 장승업 등의 화가들이 그린 책거리나 도자기, 신선도, 민화 등으로 확장, 계승되어 오늘에 이른다. 당시의 귀족들 사이에서 수요가 많았다고 추정되는 기명절지화에 등장하는 도자기나 꽃 등은 일상적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다. ‘나는 곧 우주요, 우주는 곧 나‘라는 불교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철학, 즉 사군자인 난초나 매화의 한 줄기, 한 가닥이 곧 자연, 온 우주를 상징하는 전체일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서양의 정물화인 바니타스(Vanitas)와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이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같다는 대전제, 우리는 모두 결국 흙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바니타스의 정서는 동양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명절지화에 등장하는 꽃, 새, 각종 문방구와 책들이 행복과 평안, 학문의 깊이와 벼슬 등의 복락의 표현이었다는 것에 반해 짙은 허무함이 깔려 있는 바니타스 회화는 삶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에 관한 것이며 특히 중세 이후 흑사병이나 전쟁 등을 겪은 유럽인들의 슬픔과 해탈의 정서가 반영된 그림이라는 것이다. 잠시 지나가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결국 부질없고 허무할 뿐 보다 경건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바니타스 정물화는 역설적으로 그토록 많은 기물로 장식되고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개한 꽃들은 실은 시들어가고 있음을, 유혹하는 듯 탐스러운 과일은 곧 부패할 것임을 동시에 보여준다. 곧 꺼질 듯 불안한 촛불,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릴 지식을 상징하는 책, 유한함을 상징하는 모래시계나 하루살이 등 같은 소재일지라도 바니타스화는 인간의 욕망과 임박한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경고하는 이분법, 삶과 죽음이 결국 같아서 허무하다는 묘한 구분으로 인해 자연과의 조화와 합일을 강조하는 동양화와 다른 느낌이 들게 한다. 재료와 형식, 내용 등의 채택이나 표현에 있어 자유로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온 이지원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서 산이나 바다, 별 등의 자연과 합일하고 아득한 빙하에서 여행하는 펭귄 한 마리가 되기도 하는 자신의 그림이 결국 ‘여기’, ‘지금’에 관한 것이라 설명한다. 현대신학에서 천당과 지옥을 더 이상 이전처럼 ‘여기와 그 너머’의 식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과 같이 아이를 수족관에 데리고 다니며 몇 시간이고 그 안의 동식물을 관찰하는 자신의 일상을 ‘그림’이라는 환상의 공간 속에 담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순간 시간을 잊고 몰입하여 그림과 일체가 되는 것이 기명절지화와 바니타스 정물화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라톤 선수가 35km 지점을 넘기면 경험한다는, ‘러너즈 하이(Runner’s high)’라 표현되는 강렬한 신체와 정신의 일치,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이 연주에 몰두하여 악보와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선율과 하나되는 것과 같다. 이지원 작가는 그러한 물아일체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더 큰 평온과 조화를 찾는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며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 그 명상을 통해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작가의 최근작들은 거대한 풍경에서 보다 친근한 정물로의 이행, 그 속에서 계속되는 동서양의 형식이나 내용의 융합에 관한 작품들이다. 고대의 석고상 혹은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꽃병에 놓인 꽃들은 작가가 구사하는 특유의 파스텔 색감으로 인해 환상적인 실내 혹은 어떤 비현실적인 공간을 암시하고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즐겨 사용한 전통 종교화의 일종인 삼면화(Triptych)의 형식으로 전시되었다. 초록 수련이 펼쳐진 연못을 보며 따라 걷는 빗 속의 산책을 묘사한 작품, ‘우중산책(雨中散策)’ 또한 캔버스가 배접된 네 폭 병풍이다. 석고상과 같은 서양의 모티브를 사용하기도 하고 용왕을 살리기 위해 구해야 하는 토끼의 간을 대신해 버섯이 등장하는 등 동양적 내러티브를 암시하기도 하며, 동양화에서 중시되는 윤곽선을 먹의 검은색 대신 자신에게 의미있는 다른 파스텔 계열의 색으로 처리하는 등 동서양 회화의 여러 특징을 혼용하여 더욱 다채롭고 신비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과 부귀영화에 관한 것이든, 죽음에 대한 경고이든, 더 나은 삶에 대한 교훈이든, 즐거움을 추구하고 복을 구하는 염원이든 동서양의 정물화의 많은 요소를 자유롭게 변주시키며 작가는 평면 위에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튼튼하게 구축하고 있다.
작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이 그저 좋았다고 한다. 그림이 일상의 거의 전부였던 작가의 그림에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는 물론 미술의 역사의 흔적이나 영향 등의 다양한 담론이 숨겨져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실은 기이한 보물섬과 같다고 말하는 이지원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작가가 그림을 통해 가졌을 설렘, 행복감과 위안, 희망과 의지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 대안공간 리알티 아트 디렉터 김윤경
이지원 작가와 함께하는 '미니족자 만들기'
일시: 4. 18.(금) 오후 3시 / 소요시간 40분
장소: 대구아트웨이 쇼룸6번 스튜디오
대상: 전연령 6명 정도
신청: 인스타그램 @yiicasso 검색 후 DM전송 또는 010-6440-6657로 문자신청
내용: 동양화의 기명절지화를 미니족자 형태로 표현해본다. 부귀영화를 가져다 준다는 의미를 담은 모란도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