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룸 8번 스튜디오 이상헌
<내재된 기억: 조각가의 의자>
2025. 7. 7.(월) ~7. 31.(목)
이상헌 조각 개인전 ‘조각가의 의자’
사람을 만나 그가 살아온 여정을 듣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삶의 여정에서 겪었던 고난, 기뻤던 일, 마음에 깊이 새겨진 기억 등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면서 그를 더욱 깊이 알게 된다. 그 사람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그의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면(裏面)을 보게 되면서 그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한다.
이상헌 조각가를 만나 그의 삶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느낀다. 작품은 그 작가의 삶이 드러난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은 이러한 작가의 삶이 더욱 강하게 투영되는 것 같다.
-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 -
작가의 첫 개인전(2003년)부터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옛날 초등학교 교실에 있던 나무 의자다. 다양하게 변주하며 작품에 담았던 이 의자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의자는 왜 이렇게 그의 작품에 머무는 것일까.
경북 의성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 의성에서 홀로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3남 2녀 중 넷째였던 그가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견뎌야 했던 그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대구의 가족과 살게 되었지만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월세 집을 전전하며 주인의 눈치를 보는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비가 오는 어느 날 하교 시간,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오는데 그를 데리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엄마는 곧 올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며 기다리는 척했다. 아이들이 하나둘 가고 난 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겸 다시 교실로 발길을 돌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교실 한가운데 넘어진 채로 남겨져 있던 의자를 보는 순간 설움이 복받쳤다. 그리고 교실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 의자를 보는 순간 자신의 처지와 중첩되어 그동안의 수많은 감정까지 더해져 서러운 마음이 폭발했던 것 같다.
지금도 생생한 당시의 기억은 넘어진 의자, 거꾸로 매달린 의자 등 끊임없이 변주되어 작품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항상 불안한 공간으로 남아있던 ‘집’ 역시 중요한 작품 소재이다.
이 시기의 아픈 기억과 무의식적 불안, 안정적인 삶에 대한 갈망 등은 거꾸로 매달린 의자가 있는 어설픈 집의 형태를 통해 나타난다. 홀로 시골에 남아 외로움과 불안함을 견뎌야 했던 유년 시절, 그리움으로 부모와 형제들이 사는 곳을 향해 바라본 미루나무,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미루나무와 구름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유다.
결혼 후 늦게 들어간 대학원생 시절, 뇌종양으로 손과 발 등이 커지는 희귀병을 앓게 되면서 심신의 고통을 겪고 수술과 치료로 극복 후 그의 삶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우여곡절이 담긴 삶은 그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 시기를 거친 후 작품에 표현된 사람의 형상은 목은 길고, 손과 발은 유난히 크게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왜곡된 인체 형상이 오히려 관람자로부터 큰 공감을 얻게 된다. 변형된 의자와 인체는 아픈 기억의 잔재이지만, 결국 미래를 향한 작가의 끊임없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 작품과 함께 삶도 익어가는 작가 -
가장으로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현실적 무게도 그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의 작업 근간을 유지하는 가운데 타인의 의견을 녹여낸 해학적인 모습의 ‘피에로’ 서랍장으로 표현한 ‘Memory box’ 그리고 ‘몽상가의 의자’ 시리즈 등은 아트페어를 통해 관람객들의 인기를 끈 작품들이다. 이 시기의 작품 대부분이 새로운 곳으로 떠나 남아있지 않는 시리즈도 많다. 이렇게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해 주었던 인기 시리즈의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런 유혹에 이끌려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작가정신을 고집하면서 새로운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이상헌 작가의 창작 의지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수많은 국내외 공모전이나 개인전 등을 통해 대형 나무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특히 고도의 집중으로 자신을 잊는 적정(寂靜) 상태인 ‘삼매(三昧)’의 경지를 경험하는 것 같다.
“나무 조각은 엄청난 노동의 시간을 통해야 온전히 원하는 작품으로 탄생한다. 나는 이를 ‘노동을 통한 사유’라 표현하고 싶다. 극한의 육체적 한계에 다다를 때쯤 고통은 새로운 작품으로 생명을 얻는데, 이때의 희열은 어떠한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확인할 때 또 다른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장자가 말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힘이 든다는 생각도 없이 나무와 하나가 되어 작업이 진행되는 듯한데,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은 작가와 관람객의 감성을 이어주는 소통의 연결고리가 된다.
삶을 담아내는 작가의 작업은 자신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과정이며, 그런 작업의 결과는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의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무를 깎는 행위를 통해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많이 치유되었다. 나의 작품은 작업실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나의 공간을 벗어나 공공의 장소에 놓인 작품들을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며 감정의 공감을 통한 정서적 교감이 만들어지고 또 치유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한다.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리라. 공자는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그것이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다.
최근 무릎 관절 수술로 또다시 육체적 한계를 실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작가의 작업과 삶도 갈수록 잘 익어갈 것이라 믿는다.
2025. 6. 호일당에서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나에게 의자는>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놓인 작품 의자에 잠시 앉아 봅니다. 익숙하거나 낯선 감각 속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어떤 ‘의자’를 떠올려 봅니다.
오래된 학교 의자, 누군가의 집, 공원 벤치, 혹은 마음속 한 켠에 자리한 상상의 의자까지.
그 의자에 얽힌 기억이나 생각을 짧은 글로 적어 지정된 벽에 붙이면, 각자의 이야기가 하나의 커다란 기억의 풍경을 완성해 갑니다.
프로그램명: 나에게 의자는?
일시: 2025. 7. 11.(금) 오후 4시~6시
2025. 7. 25.(금) 오후 4시~6시
장소: 대구아트웨이 쇼룸 8번 스튜디오 및 기획전시실1
소요시간: 10분 내외
대상/인원: 제한 없음
재료비: 없음
신청방법: 현장 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