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이민정 개인전 <얇은 벽>
전시기간 : 2023년 8월 21일(월) ~ 9월 23일(토)
전시장소 : 대구아트웨이 스페이스1 전시실
올해 3기를 맞은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청년키움프로젝트 <개인전>은 지역의 유망한 청년 예술가의 창의적, 도전적 예술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자 2021년에 처음 기획되었습니다.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총 6명의 청년 예술가가 선정되었으며, 선정 작가에게는 ‘생애 최초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 세번째 전시로 이민정 작가가 참여합니다.
종이풍경 2023. 02. 23
사적 공간이라 지칭할 수 있는 개인의 물리적인 공간과 심리적인 대상과의 거리는 오늘날 층간·벽간 소음과 값비싼 공간, SNS 발달로 인한 정보 노출 등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작고 좁아지는 것 같다.
그러한 현상을 얇은 공간으로 해석하여 흰 종이를 사용하여 미니어처 풍경을 만든다. 종이는 불투명한 면을 가지면서도 투과성이 높아 구역을 나누는 얇은 벽을 비유하기에 적절한 재료라 생각한다. 종이에 그려지는 다면체 도면은 정확하지 않은 치수로 본인에 의해 손쉽게 그려지는데, 이는 빠르게 쌓아올려진 주거지의 제작 방식을 비유한 행위이다.
그런 시간이 제법 되었다.
<종이 풍경> 작업은 타자 또는 사회와 맺는 필연적인 관계에서 수동적으로 결정되는 개인의 영역이 흥미로워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빛이 사물을 투과하는 현상을 종이집 풍경화로 내러티브하게 보여주면서 현대인들의 줄어드는 사적 공간을 말하고자 했다. 작업을 함으로써 개인적 불편함을 해소하고 본인과 같은 불편함을 겪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고자 한다.
이민정의 도시 건설하기
이생강(예술과공감연구소, 미학)
‘건축은 빛과 벽돌에 짓는 시’
김수근(건축가, 1931~1986)
1. 연약하고 무른
모두 잠든 이른 새벽. 창문 밖을 고요히 응시한다. 밖은 이제 막 어슴푸레 해가 뜨려고 한다. 다닥다닥. 밤새 어둠과 엉겨 붙어있던 도시는 밝아오는 새벽에 자신의 얼굴을 내맡긴다. 그것은 빛과 그림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부분은 뽀얀 그 속살을 보였다가, 어떤 부분은 그림자로 숨는다. 이민정의 <빛의 고동>(oil on canvas, 창문 걸쇠, 100 x 100cm, 2023)은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캔버스 사이의 창문 걸쇠 오브제가 우리를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민정 작가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어떤 환영들, 일렁이는 불특정한 추상적 이미지를 그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 앞으로 다가가, 작품의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얀 캔버스 위에 아주 얇은 벽들이 그들만의 질서로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따금 창문과 옥상이 있는 완성된 형태의 건물 모습이었다가, 덩그러니 남겨진 허물어진 벽이 되기도 하고, 서로 자신들끼리 뒤엉켜 버려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도시의 이면처럼 구깃구깃 구겨져 있기도 하다.
그녀의 회화 작품을 하나하나 꼼꼼히 눈으로 확인하며 쫓아가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치 ‘이 벽은 종이로 되어있어요’라는 것을 알리는 메시지처럼 종이학, 종이접기 형상이 등장한다. 그렇다. 이민정의 건물과 도시는 두꺼운 벽돌로 쌓아 올린, 반듯하고 완벽한 생김새와는 다르다. 후욱~하고 바람이 불면 한순간 사라질, 흐느적거리고 연약한 종이 벽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 연약한 형상에도 불구하고 스러지지 않으며, 꼿꼿이 ‘벽’이라는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
연약하고 무르게. 그렇지만 민감하고도 섬세하게. 작가는 이 벽을 그렇게 표현한다. 화면 안에서는 강한 색채도 없고, 어디 한군데 단단하게 쥐어짠 부분을 찾을 수 없다. 짐작건대 이런 표현적 특징은 작가의 개인적 특질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민정 작가는 조심스럽고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매우 여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섬세함도 함께 지니고 있다. 예민하고 섬세하기에 포착할 수 밖에 없는 어떤 것들. 작가는 자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도시의 공기, 향취, 분위기를 잡아내, 기어코 화면으로 옮기는 일을 수행한다. 이 장면을 잔잔한 모노톤(monotone)의 컬러감을 사용하여, 붓끝으로 섬세하게 빛의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이런 빛의 다양한 양상을 담아낸 이민정의 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에 가득차 보이기도 하고, 파괴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빛나는 아름다움. 도시만의 질서 정연함과 발전된 어떤 아름다움에 작가가 보내는 찬사로 보이기도 하고, 화려한 불꽃에 모든 것을 불살라 곧 사라질. 그렇기에 열락(悅樂)에 타오르는 어떤 디스토피아적 예언으로 보이기도 한다.
2. 확장된 경계
도시 속에서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벽’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혼자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낯선 도시를 처음 여행할 때의 어색함과 서먹함을 알고 있다. 그때 찾아 들어간 나만의 숙소란! 비로소 혼자 있게 될 때의 안정감. 두터운 벽은 나를 외부로부터 든든히 지켜주는 존재로,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것도 잠시. 이 벽은 내게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때 밖에서 들리는 희미한 인기척 혹은 TV 소리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
지도 위에 얇은 선 하나만 그어도 이쪽과 저쪽이 나뉘는 휴전선이 되어버린다. 이 ‘선’은 곧바로 ‘벽’이 되어버리고 벽은 즉각적으로 ‘경계’를 나누는 강력한 상징이 되어버린다. 작가는 그동안, 이 ‘벽-경계’에 관한 시각적 탐구를 성실하게 지속해서 진행해왔다. 무르고 얇은 선과 벽을 켜켜이 화면 위로 올리며 외부와 내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고찰해왔다. 연약하고 섬세한 선과 붓 터치는 바깥 세계와의 만남을 원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벽과 그로 인해 발생한 경계는 자기 자신 안으로 집중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욕망이 묻어있는 것으로 유추해본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설치작업, <휘이다>(반투명 pvc에 매직, 귀마개, 가변설치, 2023)는 이런 작가의 의도가 뚜렷이 보인다. 투명한 재질의 비닐(pvc) 위에는 이민정의 도시가 빼곡히 서 있다. 한 장은 벽면에 붙어있고 다른 한 장은 떨어져 있다. 관람객의 움직임과 도시의 바람, 공기의 움직임에 의해 서로 부딪혔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한다. 자신의 보호막을 지키고도 싶고, 그 분위기에 닿아, 어울리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여기서도 작가의 섬세함이 나타나는데, 이 두 장의 비닐을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싸구려 귀마개로 고정하여 설치하였다. 귀마개의 촉촉하면서도 무른 촉감이 시각적으로 느껴진다. 얇디얇은 벽 뒤로 들려오는 어스름한 소음이 연상된다. 작가는 귀마개를 끼고 싶은 걸까?? 벗어버리고 싶은 걸까?? 다른 상상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작가는 지금까지 각자 닫힌 관계로, 너와 나의 물리적 경계를 뚜렷이 나누는 작업을 해왔다면, 이번 ‘대구아트웨이 스페이스 1’의 <<얇은 벽>>전시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실험적 움직임을 보인다. 우선 ‘대구아트웨이 스페이스 1’의 전시공간은 전면 유리창의 오픈 공간으로 3면의 벽만 전시로 이용하는 윈도우 갤러리이다. 그 정중앙에는 일반 벽 보다는 얇은 가벽이 하나의 공간을 둘로 나누는 경계로 작동하고 있다. 이 가벽으로 인해, 전시공간은 전시할 수 있는 벽이 6면이 생긴다. 작가는 옆면이 11cm밖에 안 되는 이 ‘얇은 벽’에 강렬한 영감을 받은 것 같다. 이 전시장의 조건을 자신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2차원의 회화와 3차원의 공간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본인이 고수해 온 경계의 확장을 꾀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보통 11cm밖에 안 되는 이 옆면을 전시 장소로 사용하기보다는 단순 벽면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작가는 본인의 공간개념과 접목하여, 가벽을 포함한 5면의 전시 벽면을 하나의 장면으로 이해하고 설치를 시도한다. 우선 양 옆의 날개로 파악되는 공간에는 <돌출된 전경 1>(oil on canvas, 144 x 430 cm, 2023)과 <돌출된 전경 2>(oil on canvas, 144 x 430 cm, 2023)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작가는 이 두 작업의 세로 사이즈에 맞추어 144cm, 가로 폭 11cm에 맞추어, 이 장소에만 특별하게 설치되는 새로운 신작 <범어동 835 스페이스 1>(oil on canvas, 144 x 11 cm, 2023)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이 세 작업이 연결되는 가벽의 넓은 옆 벽면에는 작가가 현장에서 무르고 약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도시를 잇는 드로잉을 진행하였다.
이런 설치는 전시장의 3차원 공간을 2차원의 회화로 해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물리적 경계와 심리적 경계가 동시에 확장된다. 이 실험의 결과가 성공적이든 실패이든 상관없이, 이러한 도전은 매우 높게 평가한다. 이민정 작가는 주로 회화 작업을 진행해 온 작가인데도, 본인이 도시의 이미지를 짓는 작가이다 보니, 공간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 보인다. 놀라운 지점이다. 처음 전시하는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작업의 연계성을 가지고 기획하고 설치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평소에 작가가 자신의 작업 안으로 얼마나 천착하고 있으며, 작업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시도를 통해, 앞으로 작가가 실험을 확장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길이 열릴 것으로 판단된다.
3. 빛과 선
이민정 작가는 20대 여성작가로 ‘대구아트웨이 스페이스 1’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진행한다. 첫 개인전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회화 작업과 공간을 이해하는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각 작품 안에서 그동안과는 다른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도전의 결과가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각자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건축가 김수근은 ‘건축은 빛과 벽돌로 짓는 시’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려, 이렇게 표현해본다. ‘이민정의 도시는 빛과 선으로 직조하는 문학이다.’ 이민정은 그렇게 자신의 캔버스와 공간 위에 ‘빛과 선’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도시를 건축 중이다. 개인과 사회, 내부와 외부, 경계 긋고 풀어헤치는 관계를 이야기하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앞으로 변화무쌍하게 지어질 혹은 변형되고 새롭게 태어날 그녀의 도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