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조경재 개인전 <8AM Street, Red dot>
전시기간 : 2023년 5월 30일(화) ~ 7월 1일(토)
전시장소 : 대구아트웨이 스페이스1 전시실
올해 3기를 맞은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청년키움프로젝트 <개인전>은 지역의 유망한 청년 예술가의 창의적, 도전적 예술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자 2021년에 처음 기획되었습니다.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총 6명의 청년 예술가가 선정되었으며, 선정 작가에게는 ‘생애 최초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 첫번째 전시로 조경재 작가가 참여합니다.
나는 매일 아침 8시가 되면 항상 같은 길을 지나 출근한다. 하루는 길 건너편에 한 여성이 지친 표정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흰색 종이가방에 꽂혀있는 노란색 꽃 한 송이가 왠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날 이후부터 그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 어떤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SNS에 새로운 알림이 오면 뜨는 작은 붉은색 점 표시 같았다. 바쁜 아침 출근 시간에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지나야지만 늦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렇게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하고 답답하지만, 이런 반복이 있기에 우리는 안정된 삶을 유지하고 또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하루하루가 지겹다고 느껴질 때면 차에서 풍선을 꺼내어 헬륨가스를 불어 넣어 준다.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크게 부풀어 올라 이리저리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왠지 풍선이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작게 만들었다가 다시 크게 만들 때는 생명을 만드는 조물주가 된 것 같은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오늘이지만 그 속에서 작은 변화를 찾고 차이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서 이제는 내일이 매일 기다려진다.
미지의 위태로운 신호
- 정훈 /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사진미디어전공 교수 (사진 이론가, 시각문화 연구자)
동시대는 다중(multitude)의 시대이다. 다변화된 삶의 양식과 개체의 고유성에 기반한 사회 관계망이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조합과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물질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 네트워크 내부의 다면적이고 변화하는 관계망의 접속점으로도 존재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실존하는 일상의 물질세계를 어딘가 결여가 된 시공간처럼 느끼게 하고 그렇게 바라보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삶의 서사가 역동적으로 출현하고 확산하며 영구히 보존되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내부와 달리, 우리가 실존하는 물질세계에서의 삶과 기억은 쉽사리 간과되고 빈번하게 망각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조경재는 자신과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다중의 삶을 관찰하는 시각적 행위를 사진으로 남긴다. 그는 자가 운전하면서 회사로 출근하는 집 근처의 거리에서 차창 너머로 보이는 인물들을 찍는데, 그 결과물은 일견 연극무대 위에서 고독한 현대인의 역할을 맡은 연기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버스 정류소에서 외로이 스마트폰을 바라보거나 팔짱 낀 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건널목에서 정당 유니폼을 입고서 정치인 홍보를 하거나 보행신호가 켜질 때까지 대기하는 사람 등 평범한 일상 풍경 속의 인물들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한 채 내면에 간직한 삶의 서사를 전달하려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조경재는 출근길에서 거리두기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목격했던 사람들로부터 때때로 시선을 끄는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특정한 인물의 제스처와 옷차림, 소지품 등으로부터 미지의 신호가 지각되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풍경에 인위적으로 후 첨부된 빨간 풍선의 이미지는 이처럼 사진가의 시선을 부여잡은 대상을 지시하는 장치이다. 또한 읽지 않은 메시지를 표시하는 카카오톡 앱의 레드닷처럼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전하려는 메시지를 지닌 대상임을 알려주는 시각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빨간 풍선은 낱장의 사진에서 무엇인가를 상징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연상작용을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미해 보이기에 풍선을 쥔 인물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시각적 태도에 관한 궁금증만을 증폭시키는 작용을 한다. 출근길에 카메라를 든 사진가에게 제기된 미지의 인물에 관한 궁금증이 레드닷이라는 시각적 신호를 매개로 관객에게로 전이되는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미지의 신호로 수용되는 풍선 쥔 인물은 대체 어떠한 존재일까.
이에 관한 해독의 실마리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출근길의 뒷배경이 되는 철조망에 드문드문 걸려 있는 고압 전류경고 표시에 있다. 풍경의 세부를 구성하는 이 경고판의 이미지는 사진 속의 일상 공간이 그 본질에서 안전하지 않은 시공간임을 알려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 표시가 찍힌 사진들로 인하여 빨간 풍선의 주목도 높은 ‘레드닷’ 신호는 어떠한 구체적인 의미를 상징하거나 알려주는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점차 풍선을 쥔 인물에게 내재한 무정형의 불안 요소를 가리키는 지표로 변화한다. 사진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사진가에게 지각된 미지의 신호를 품은 이미지 공간으로 질적인 변화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재맥락화가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난 사진 이미지는 풍선을 쥔 조경재가 아들과 함께 거리에서 이불을 덮고 잠자는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다. 출근길의 사람들이란 외부세계를 촬영한 다른 사진과 달리 이 장면은 사진가의 내면을 지시하는 이미지 공간으로서 그 자체로 전체 작업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의 기준이 된다.
이 사진은 시각적으로 햇살이 드는 부분과 그늘진 부분으로 장면이 이분 된다. 전자의 공간에는 고압 전류 경고판이, 후자의 공간에는 잠자는 사진가 부자와 빨간 풍선이 주요 오브제로 자리한다. 말하자면 전자는 물질세계의 일상 풍경을, 후자는 그러한 일상의 이면(e.g. 디지털 네트워크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중)을 암시하는 공간이다. 이는 조경재의 사진이 표면적으로는 물질세계의 일상 공간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일상보다는 그를 초월하는 이면의 공간을 지향하는 다중(multitude)의 실존적 풍경을 다루는 사진임을 알려준다. 잠자는 조경재 부자의 이미지는 물질세계의 일상을 초월한 다른 공간에 접속되어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사진 전반에 흐르는 미묘한 불안의 신호는 이 ‘다른 공간’에 비해 무엇인가 결여가 된 시공간으로 지각되는 물질세계에서 점점 고립되고 단절되는 소시민의 실존적인 삶에 기인한다. 반복적인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가상실효적인(virtual) 공간에서의 소통을 열망하는 풍선 쥔 인물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점차 희미해지는 물질세계의 실존에 관한 불안의 신호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일련의 사진 중 유일하게 시선을 마주하는 풍선을 쥔 할머니와 한 학생의 사진은 희망의 신호가 된다.) 한 마디로 조경재의 작업은 이 미지의 위태로운 신호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으로써 사진 행위를 이어나간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